백화점 속 케미컬

옛날 사람들은 버드나무 껍질, 작약 뿌리, 양귀비 수액 등으로 진통제를 대신해왔습니다. 아스피린, 모르핀 등 익숙한 약물의 시초입니다. 이런 약물들은 20세기 초 이후 화학적으로 구조가 규명되며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각 천연물질이 가진 독성을 줄이거나 순도를 높이는 등의 과정을 거쳐 현대화 되었고, 아직까지도 현대 의약품의 50% 이상이 자연에서 유래했거나 자연의 구조를 모방해서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우리 몸에 작용하는 작은 알약 한 알은 오랜 기간의 연구와 셀 수 없는 노력, 실험의 결정체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섭취하는 것이니만큼 엄격한 ‘기준’이 있습니다. 모든 약은 나라 별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수출, 판매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신은 병원체의 일부를 변형하거나 약화시켜 만든 생물학적 제제로, 약물을 체내에 넣기 위해선 매우 높은 순도와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정해주는 것이 바로 약전(Pharmacopeia)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의 약전 기준을 따르고 있고,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표준은 실제 연구실과 생산라인에서 의약품 원료(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 API)나 보조 성분이 어떤 순도, 수분 함량, pH, 엔도톡신 수치 등을 만족해야 하는지를 정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실에서 익숙한 2-propanol은 USP/EP 등급이 아닐 경우 인체 접촉에 적합하지 않다고 간주되고 있고, 이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시약을 사용할 경우 실험 자체가 무효 처리되기도 합니다. 인체에 직접적으로 투여, 접촉되는 연구이기 때문에 일반 연구용 시약(Research Grade)과 약전 등급(Pharmaceutical Grade)의 차이는 단순히 가격과 불순물 정도가 아니라 실험 정밀도와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함께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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